와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와인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저 고대의 유물이나 벽화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고 성경에서도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고 하는 구결로 미루어 보건데 와인은 인류가 마신 최초의 술로 추정할 뿐이다.
와인은 포도의 종류, 발효 과정, 숙성 기간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파생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와인은 수백가지가 넘지만 크게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이 대표적이며 좀 더 세부적으로는 로제와인, 스파클링와인(샴페인), 귀부와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와인은 포도 열매와, 껍질 그리고 씨앗이 효모균과 만나 발효되는 과정에서 감미롭고 다채로운 향기를 뿜어내며 그 맛도 다양하기 때문에 ‘육감’으로 전부 맛보아야 그 진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을 시음하는 세 가지 단계
와인을 ‘육감’으로 맛보기 위한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 와인의 색깔이다. 와인 색깔을 보는 최고의 방법은 하얀색 배경, 이를테면 흰 냅킨이나 식탁보 따위에 와인잔을 비스듬히 대보는 것이다. 투과되는 빛에 따라 루비보석이나 자수정처럼 보이는 레드와인이나 밀려오는 파도에서 부서지는 물방울에 산란되는 태양빛과 같은 따스함을 보여주는 화이트와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음전에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두 번째로 냄새 맡기다. 사실 냄새 맡기야말로 와인 시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때 잔을 흔들어 와인에 산소를 공급해 맛과 향이 더 우러나오게 하는 스월링(Swirling, 잔흔들기)이라는 기교를 사용하는데 와인잔의 목 부분을 잡고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도록 가볍게 흔들어 주면 된다. 스월링의 기간에 따라 냄새가 점점 변해가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가 발산된다.
마지막으로 맛보기다. 와인은 혀에 닿는 순간, 입에 머무는 순간,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각각의 순간이 모두 다르다. 단순하게 신맛, 단맛, 쓴맛으로 구분되는 맛이 아닌 부케와 아로마가 혼합된 다양한 세계관이 압축된 와인의 즐거움을 마지막으로 맛보는 순간이다.
와인잔이 중요한 이유
와인을 즐기는 과정에서 와인잔은 단순한 잔(Glass)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와인의 색깔, 와인의 냄새(부케와 아로마), 와인의 맛들이 적절한 와인잔의 선택으로 좀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된다. 물론 맥주잔에 따라 마셨다고 와인의 맛이 크게 변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술은 좋은 부대에 담으라는 옛 성현의 말들처럼 전세계의 유수한 소믈리에들의 대다수가 동의하는 와인의 매력을 더 살리기 위한 와인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길수가 있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여기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해당 분야의 권위자 중 한명인 와인 강사 케빈 즈렐리(Kevin Zraly)가 그의 저서인 ‘와인 바이블’에 작성한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포도 선별과 줄기 제거, 그리고 경우에 따라 파쇄 작업까지 끝나고 나면 이때부터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양조 방식이 달라지는데, 그 주된 이유는 포도껍질 때문입니다. 모든 포도껍질에는 좋은 와인을 빚는 데 필수불가결한 복합적 풍미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포도껍질과 포도씨에 함유된 타닌이라는 성분은 어린 와인에 쓰고 떫은맛을 띠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의 경우에서는 이러한 것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차이는 바로 양조 과정에서 포도껍질과 포도씨의 유무로 구분된다. 단순히 적포도와 청포도의 구분으로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구분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적포도를 이용해 화이트 와인 품종을 만들 수 있으며 (예 : 캘리포니아의 진판델) 청포도 중에도 일정시간 포도즙에 포도껍질을 담아 놓아도 괜찮은 품종들이 있다고 하니 와인의 세계는 점점 더 심오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의 차이가 무엇에서 오는지 여러분들도 이제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타닌’의 함량의 차이다. 타닌은 천연 방부제로 알려져 있으며 와인에 긴 수명을 부여해주는 여러 성분 가운데 하나다. 타닌은 포도의 껍질, 줄기, 씨에서 나오며 오크통 속에서 숙성이나 발효를 거치는 등의 경우에는 나무에서도 타닌이 우러나온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타닌 함량이 높은 편인데 이는 통상적으로 포도를 껍질째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드와인잔은 상대적으로 높은 ‘타닌’ 성분 때문에 화이트 와인잔에 비해 상대적으로 볼(Bowl) 부분이 넓어서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를 잔에 가두며 시음시에 타닌을 좀 더 넓은 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형태가 추천되며 화이트 와인잔은 레드와인잔보다는 좀 더 덜한 굴곡이 있는 잔을 선택하는 것으로 화이트 와인의 풍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사실 ‘발포성 와인’으로 비슷한 종류의 와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산지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진다. 바로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이 우리가 부르는 샴페인인 것이다. 샹파뉴 지방은 훌륭한 스파클링 와인을 양조하기에 이로운 요소들이 이상적으로 조합되어 있는데 토양은 고운 백토이고 포도나무는 어디에서나 재배해도 스파클링 와인용으로 최적으로 자라는 품종이며 위치도 완벽하다. 토양, 기후, 포도나무의 이러한 조합이 이곳의 와인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반면에 스파클링 와인은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며 품질은 저마다 다르다. 스페인에서의 스파클링 와인은 ‘카바스(cavas)’라고 불리며 독일판 스파클링 와인은 ‘젝트(sekt)’라고 불린다. 뉴욕 주와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 생산지이며 해당 지역의 와이너리 대다수가 스파클링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 그러면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은 어떤 잔에 따라야 하는가?
샴페인은 무조건 ‘적당한 잔’에 따라야 한다. 샴페인 잔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최초의 쿠페(coupe – 잔이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얕은 다리 달린잔)는 그리스 신화의 여인 헬레네의 가슴을 본떠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리스인들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관능적인 경험이라고 여겼고, 그러니 그 잔을 만드는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공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 세기가 지난 후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새로운 샴페인 잔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본뜬 쿠페를 만들도록 했고, 그럼으로써 잔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지금의 샴페인잔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샴페인 잔들은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플롯형과 튤립형이 있는데 이런 모양의 잔에 샴페인을 따르면 샴페인의 기포가 구형의 모델처럼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잔 안의 와인 향과 아로마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스파클링 와인도 샴페인잔과 유사한 형태의 와인잔을 사용하면 된다.
맺으며
와인은 맛 뿐만 아니라 코르크를 열 때의 향기, 와인자체의 빛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맛의 변화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아주 매력적인 음료이다. 이러한 매력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와인의 각 종류에 적합한 잔(Glass)인 것이다. 본문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유수 브랜드인 리델(Liedel)의 와인잔을 주로 예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비싼 와인잔을 살 필요는 없다. 매니악한 취미 영역이 아니라면 다이소나 동네 마트에서 만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는 와인잔이면 충분하다. 사실 와인에는 좋은 음식과 함께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와인의 맛은 한층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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